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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혁신 기회 어떻게 잡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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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2007. 4. 4
혁신 기회 어떻게 잡을 것인가

  혁신의 정답은 고객에 있다


기업과 조직은 생명체다. 생명체인 사람이 만든 것이니 만큼 끊임없이 내외적인 환경변화에 따라 출렁거린다. 더구나 요즘처럼 외부적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나만 홀로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전하기 위해서 기업과 조직은 살아움직인다.

변화의 논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 발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문제는 조직의 구성원들은 이 변화를 그렇게 반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 벨리 조차 “새로운 것을 추진하는 것보다 어렵고 위험한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이미 많은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에 다시 길들여지라고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고 싫어한다고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이즈음의 변화 압박이다. 변화의 압박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외부에서 온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것이 시장이요, 공공부문에서 보면 그것은 시민이다. 합쳐서 공통 분모를 뽑아보면 바로 고객에게서 그런 압박이 오는 것이다. 우리의 서비스를 사주는 주체인 고객이 새로운 것을 원하면 기업과 조직은 바로 그 새로운 것을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발전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변화의 논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할까. 무조건 열심히 일하면 고객들이 만족할까? 특히 공기업 입장에서는 국민의 세금이 활동의 밑바탕인 만큼 그 아까운 혈세를 절대로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최선일까? 또는 반대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의 모델을 받아들여 가장 최근의 유행하는 경영도구를 받아들이고 컨설팅을 받아 새로운 방향을 정하면 될까? 미리 앞당겨 결론부터 말하면 변화의 방향은 ‘혁신’에서 찾으면 된다. 혁신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생존과 발전, 곧 성장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계에 내세운 화두는 바로 ‘성장’이다. 도대체 성장을 계속해나가는 나라, 조직, 기업의 비밀은 무엇일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비결을 배워 우리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에 세계의 모든 경영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그 OECD가 발견한 성장의 비결도 바로 ‘혁신’이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상당수의 독자들이 실망부터 할지 모른다. 기껏 잡은 변화의 방향이 또 혁신인가. 혁신이라는 단어는 변화 만큼이나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뭐 새삼스러울 것이 있는가. 변화나 혁신이나 개혁이나 전부 예전 것을 뜯어고치고 좀 더 쥐어짜내는 논리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왜 그런가? 혁신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포함해 각종 ‘혁신’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개념의 불명확성이다. 정책을 집행하는 당국자들이나 기업의 전략 부서나 마치 누구라도 다 아는 것처럼 혁신이란 개념을 그냥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잘라 말하지만 혁신이란 이 개념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혁신이 무엇인지만 알아도 기업 변화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개혁인가? 부정부패 청산인가? 합리화인가? 구조조정인가? 상당수 사람들이 혁신을 이런 이미지와 같이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도입해 기업 변화의 방향으로 잡고 있는 혁신은 개혁,부패청산,구조조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이미지는 사실 우리말인 ‘혁신’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혁신은 가죽 혁(革)과 새 신(新)의 합성어로 오랜 세월 우리가 써 온 말이다. 가죽옷을 바꿔 입는다는 말도 되고 좀 더 무서운 해석으로는 ‘살가죽을 벗기는 고통이 따르는 근본적인 변화’의 의미도 있다. 그런 뜻이 원래 있었던 말로 서양어인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란 단어의 번역어로 사용하고 있어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이노베이션은 우리 말 가운데 혁신이란 단어와 가장 근접하지만 그 의미는 많이 차이가 난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경영도구로서의 혁신은 예전의 우리 말 혁신이 아니라 innovation의 번역어라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는 혁신이란 말을 쓰지 않고 오히려 이노베이션이란 외국어로 그냥 쓰는게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혁신의 원래적 의미는 한마디로 이렇다. ‘시장이 원하는 새로운 상품, 서비스, 방법론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고객이 원하는 것이요, 수요가 있거나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요, 만족되면 우리 상품이나 서비스,방법론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이 높아지는 것이다. 혁신을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하면 도대체 가치란 무엇인가. 가치에 대해서는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가 워렌 버핏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가격이란 우리가 내는 돈, 가치란 그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Price is what you pay, value is what you get).’ 즉 고객들이 우리에게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바로 가치이다. 공급업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고객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바로 가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가치가 있다, 없다의 결정자는 바로 고객인 것이다.

그래서 혁신을 한마디로 요약,정리하면 회사나 조직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시장과 고객의 입장에서 가치가 있는 새 상품, 새 서비스, 새 방법론을 개척해서 제공하는 것이다. ‘살갗을 벗겨내는 고통’이나 개혁, 부정부패척결, 구조조정과는 얼마나 다른가! 혁신을 이렇게 정의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고객의 입장에 서는 자세다. 회사가 아니라 고객 중심이 될 때 회사가 하는 활동은 시장에서 먹히는, 즉 혁신적인 활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공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시장에서 매일 매일 승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혁신이 어려울까, 아니면 비교적 중장기적 비전에 입각해 운영되는 안정적인 조직인 만큼 오히려 혁신에 유리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하기에 달렸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또 변화에 느린 문화 때문에 더욱 지체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경쟁자를 생각지 않고 전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유리한 점도 적지 않다. 혁신 연구가들은 공공부문 혁신의 대표 사례로 뉴욕경찰청(NYPD)을 꼽는다. 치안면에선 최악의 도시로, 살인 강도 등 중범죄 발생률이 극도로 높았던 90년대 중반 뉴욕경찰청장으로 부임한 윌리엄 브래튼(현 LA경찰청장)의 혁신 사례가 대표적이다. 브래튼의 성공 사례는 가치혁신(Value Innovation)론의 창시자인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급소 경영(Tipping Point leadership)으로 명명해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세계전략대회에서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급소경영에 따르면 조직을 혁신할 때 나타나는 네 가지 장애물이 있다. 인식의 장애, 한정된 자원의 장애, 동기유발의 장애, 정치적 장애 등이다.

인식의 장애는 “또 변화야? 또 혁신이야?”하는 부정적 인식이다. 한정된 자원의 장애는 “돈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혁신을 이루라는 말이냐”는 식의 반발에 부딪히게 돼있다. 동기유발의 장애는 “누군가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하는 반응이 대표적인 예이다. 끝으로 정치적 장애는 혁신을 추진하는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인 따돌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영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장애가 나타나게 돼있다. 이런 장애를 넘어서지 않으면 고객지향적인 조직으로의 변화 즉 혁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인식의 장애에 대해서는 통계치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harsh) 현실’을 직접 종업원들이 목격하게 해야 한다. 필립스의 미국 법인 사장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업사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교육시간에 직접 소매체인인 홈데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통화내용을 모든 영업사원들이 직접 듣게 했다. 홈데포 사장이 불평불만의 욕을 이어가자 영업사원들은 부끄러워서 식은 땀을 흘렸다.

한정된 예산의 장애는 ‘저투입 고성과 영역(hot spot)’에 집중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혹시 이제까지 해오던 일, 그것도 수십년 동안 계속 해오던 일 가운데 별 성과도 없는데 시간과 인력과 돈을 낭비하는 부문은 없는지를 반성하고 거기에 있던 자원을 저투입 고성과 영역으로 옮기는 일이다. 브래튼의 경우는 경찰입장에서 중시하는 살인 강도 마약 등 중범죄 소통작전이라는 예전의 것을 버리고 경범죄 단속 중심으로 경찰조직을 바꿨다. 중범죄는 경찰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것이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매일 매일 만나는 소매치기 깡패 등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똑 같은 예산을 쓰면서도 자원과 인력을 시민(고객) 중심으로 바꿔가는 과정에서 혁신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이밖에 동기유발의 장애는 조직내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리더(natural leader)' 즉 혁신 마인드를 가진 간부들을 앞장서게 하고, 정치적 장애는 실력과 명분을 믿고 정면 승부를 걸기 보다는 내외부의 우회세력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우회적으로 극복하라는 조언을 담고 있다.

공기업의 혁신이 중요한 이유는 그 영향력 때문이다. 기업들은 영리추구가 유일한 목적이지만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은 사회 전반의 발전을 목표로 일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더군다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인 만큼 그 하는 일이 효과적이고 일을 수행하는 과정이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당위도 있다. 혁신이 그 조직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 더 많은 가치를 주는 일이라면 그 구체적인 방향은 사실 조직 내부의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다만 한발짝 떨어진 시각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혹시 우리가 하는 일이 고객(시민,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래된 관습처럼 우리끼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반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 속 20미터까지도 들어가본 사람이 거의 없는데 세이코나 시티즌은 예전에 수백미터 방수시계 경쟁을 벌였다. 젊은이들 말고는 카메라가 달린 디카폰을 쓰는 사람이 적은데도 휴대폰 업체들은 수백만 화소의 디카폰을 먼저 개발하려고 혈안이 돼있다. ‘경쟁’이라는 함정에 빠져 고객을 잊고 있는 대표적 예이다.

항상 고객을 생각하는 자세를 갖고 전 구성원이 그 방향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려고 선의의 경쟁을 벌일 때 혁신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방향은 그러니까 고객을 지향한 혁신이어야 옳다.

권영설 소장 yskwon@hankyung.com

* 내용출처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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